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옛날 골프 이야기 ㉻ 영친왕과 군자리 코스
영친왕이 군자리 코스에서 가족·캐디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. 가운데 안경 쓴 사람이 영친왕이고 오른쪽이 이방자 여사다. 1924년 폐장한 경성 컨트리 클럽 효창원 코스의 몫은 같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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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황기 화랑가, 반갑다 근대미술 관객몰이
되돌아 보고 싶지 않은 과거이자 여전히 뜨거운 감자. 식민 통치와 맞물려 있는 우리 근대기는 그랬다. 특히 전통 서화의 몰락과 서양화의 전파가 함께 이뤄진 이 시기 미술은 이전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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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Art] 구한말에 ‘파격 사군자’ 꽃핀 까닭은 …
한량으로 지내던 석파 이하응(1820∼98)은 서른 즈음에 추사 김정희(1786~1856)를 찾아갔다. 추사가 제주도 유배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다. 석파는 후대에 흥선대원군이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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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친왕 일본 생활 기록한 사진 공개
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고종이 폐위당하고 맏아들 순종이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로 즉위하던 1907년. 10세의 영친왕 이은(고종의 일곱째 아들)이 황태자로 책봉됐다. 그는 곧바로 조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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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황손이라는 역사의 굴레 너무 힘겨워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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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태조 이성계 사후 600년-④-] 비극적인 이구 황세손의 마지막 순간
이구(사진) 씨는 첫 부인 줄리아 여사와 헤어지고 일본에서 다른 여인과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. 이 여인은 오랫동안 지병을 앓아왔고 이구 씨 사망 당시에도 수술을 한 후 병석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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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태조 이성계 사후 600년-①] "일본에도 마지막 황세손 이구 墓 있다?"
올해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사후 600년이 되는 해다. 9월에는 ‘조선 왕릉’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유네스코 실사가 있었다. 그러나 끝나지 않은 조선 왕조의 비극의 역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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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남기고] 나의 선택 나의 패션 2. 멋내기 DNA
1904년께 외할아버지와 어머니가 만주의 한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. 사파리 스타일로 멋지게 차려 입은 외할아버지는 무남독녀인 어머니에게 남자 아이 옷을 입히곤 하셨다고 한다.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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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사진] 1928년 프랑스 간 영친왕 부부
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과 부인 이방자 여사가 1928년 1월 프랑스를 여행한 기록 화면이 발견됐다. KBS가 프랑스 알베르칸 박물관으로부터 입수해 9일 보도한 화면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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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마지막 황실 … ' 사진전 서울대 박물관서 열려
부축받는 고종 고종 황제(왼쪽 중앙)가 1918년 1월 15일 창덕궁 선원전(선대왕의 어진을 모신 곳)에 예를 올리기 위해 침소인 덕수궁 함녕전을 나서고 있다. 오른편 무리의 중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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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부부 '사랑과 이별' 영화로 본다
독일계 미국인 줄리아 멀록(83.(左)) 여사. 우리에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 고 이구(1931~2005.(右))씨의 전 부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. 영화처럼 파란만장한 그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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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종·순종·영친왕 … 구한말 황실 희귀 사진
구한말 황실의 모습을 보여주는 희귀 사진이 발견됐다. 최진연 대한사진예술가협회 회장은 25일 조선 황실 사진을 공개했다. 왼쪽부터 영친왕.순종.고종.귀비엄씨.덕혜옹주. 이 사진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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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문화 노트] 고 이구씨 '황세손' 호칭 이래저래 성급
대한제국 황손(皇孫) 고 이구(李玖)씨 장례식은 성대히 끝났지만 몇가지 아쉬움이 남는다. 우선 호칭 문제다. 문화재청과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은 그의 타계 사실을 알리며 '대한제국 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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명성황후 시해범 후손들 "일 왕실 사과해야"
"좀 더 일찍 왔어야 했습니다. 시해 사건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합니다." 명성황후 시해범의 후손들이 고종 황제와 명성황후가 묻힌 경기도 남양주 홍릉을 찾아 사죄의 절을 올렸다. 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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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week& cover story] 보신각 종지기 5대 조진호씨
"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'종님'을 지킬 테지만 앞으로 얼마나 할 수 있을지…." 솔과 수건으로 부지런히 청동 종의 먼지를 닦아내던 주름진 손이 잠시 멈췄다. 후임자를 공모해 보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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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서울 만들기] 29. 어린이대공원
어린이대공원이 있는 서울시 광진구 능동 일대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비인 순명황후 민씨의 능터였다. 1929년 조선총독부가 이곳에 서울컨트리구락부라는 골프장을 건설했다. 겉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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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마지막 황제 순종의 일본 방문길] 下
부산 영주항에서 일본 군함 비전(肥前)을 타고 1917년 6월 9일 오전 8시 30분 출발한 순종 일행은 그날 오후 8시쯤 시모노세키(下關)에 도착했다. 일본 궁내성의 서기관급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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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멘탈 스포츠'
스코틀랜드 남동부 해안 골프장은 '링크스(Links)'라고 한다. 바다와 육지를 '연결(Link)'하는 모래 반, 잔디 반의 언덕을 말한다. 이곳에서 목동들이 양떼를 몰던 막대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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첼리스트 故 전봉초씨
지난 4일 84세로 타계한 첼리스트 전봉초(全鳳楚)씨는 한국 실내악의 초석을 쌓은 음악인이다. 고인이 1965년 서울대 음대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창단한 서울바로크합주단은 현재 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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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사람 사람] 박재연교수 사라진 우리말 뜻 밝혀
한 중국문학자의 노력으로 18세기 전후의 우리말과 중국어의 상관관계가 일부 밝혀지게 됐다. 선문대 중국학과 박재연(朴在淵.43)교수는 1987년부터 전문가용 『조선시대 중한대사전』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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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별세한 최무룡씨] 60년대 영화전성기 스타 '천의 얼굴'
원로 영화배우 최무룡(崔戊龍.사진)씨가 11일 오후 9시40분쯤 경기도 부천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. 71세. 28년 경기도 파주 출생인 崔씨는 중앙대 법대 재학중 연극 '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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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웨딩드레스 변천사 전시회' 27일까지 열려
아르누보풍에서 공주풍까지. 우리나라에 서양식 웨딩드레스가 첫선을 보인 것은 1920년 최후의 황태자비 이방자여사가 영친왕과 결혼식에서다. 이방자여사의 웨딩드레스는 동양적인 색조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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독립운동 공로 건국훈장 이병희女史
『자금을 대주며 독립투쟁을 지원하던 영친왕 내관의 손자가 나라를 배신해 육사(陸史)를 밀고하는 바람에 함께 붙잡혔지요.죽지않을 만큼 고문당한 육사선생은 피고름을 쏟아내며 두눈을 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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德惠翁主
1963년 11월22일 영친왕(英親王) 이은(李垠)은 부인 방자(方子)와 함께 영구 귀국했다.1907년 10세 어린 나이로 일본에 볼모로 끌려간지 56년만이었다.이보다 한해 앞선